적성
시간이 정말 빠르다. 2018년 11월 26일 월요일 첫 출근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엄청 설레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던 스타트업의 전형적인 모습은 10명 정도 되는 팀원들이 공유 오피스에서 자신들만의 서비스를 열심히 만들어나가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상상했기에 나의 회사는 정말 딱 스타트업 다웠다. 스타트업 다운 스타트업에 한 명의 멤버로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다.
항상 나는 1년을 채우지 못했다. 창업도 1년을 채우지 못했고 전 회사도 1년을 채우지 못했고 개발 학원도 1년을 채우지 못했다. 왜 채우지 못했냐고 물어보면 각 상황마다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있지만 다 핑계인 것 같고 결국 끈기가 없었던 것 같다. 재미없고 어렵고 집중 안 되는 상황에서 나는 꼭 벗어나야만 했다. 주위 사람들이 '안 맞아도 하다 보면 맞는 거다.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사느냐.' 라 말할 때 나는 왜 더 때려치우고 싶은 건지 (청개구리 심보가 조금 있나 보다) 여자 친구가 내가 스타트업에 취직한다고 하니 1년을 버틸 수 있으려나 하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난 장난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나 자신이 좀 불안했다.
이런 마음이 있었기에 나에게 1주년은 정말 의미가 있다. 앞의 것들은 흔들림의 순간이 종종 있었지만 이번 1년은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물론 스트레스가 많은 계절은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포기하고 싶어서가 아닌 더 잘 하고 싶어서였다. 진짜 이것이 적성인가 싶을 정도로 나는 일했던 대부분의 순간들이 행복했던 것 같다. 적성에 맞는 일은 진짜 있는 것 같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조금 무뎌짐은 있겠지만 초반 몇 년이라도 '이 일이 정말 적성에 맞는걸'이라는 생각이 드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성장
프로그래머로서 나는 정말 정말 많이 성장했다. 또 웹서버 개발을 맡았기에 더 많이 성장했다. 학원에서 안드로이드를 배웠기에 안드로이드 개발자를 희망했지만 회사는 웹서버 개발자를 원했고 나는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신입답게 패기 있게 말했기에 웹서버 개발자가 되었다. 리눅스부터 서버, 쿼리까지 나누자면 세부적으로 다 나눠서 배워야 할 것들을 한방에 배웠다. 개발 대장님의 모토가 '다 할 수 있어야 한다'였기 때문에 다 해야 했다. 배움의 끝이 없구나 하는 느낌을 오랜만에 또 느꼈다. 대학교 수학 전공을 공부할 때 느꼈던 감정이다. 수학과 다른 점은 수학은 배우면 배울수록 써먹을 때가 없게 느껴졌지만 개발은 배우면 배울수록 써먹을게 많다고 느껴진다는 점이다.
최근 회사 개발자 채용이 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개발자에게 비전공자 개발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따져보면 우리 회사 구성원의 반이 개발자인데 나 빼고는 모두 컴퓨터공학과 출신이다. 이번에 팀장님이 채용 지원자들의 서류를 보면서 하시는 말씀이 컴퓨터공학과인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굳이 비전공자를 뽑을 필요는 없다고 느껴지신다고 하셨다. 맞는 말이긴 했다. 나는 정말 정말 특이 케이스라고 말씀하셨다. 채용박람회를 통하여 충분히 많은 대화를 해보았기에 고민을 통해 뽑으신 거라고 말씀하셨다. 팀장님께서는 예전과 크게 생각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나 덕분에 자연과학계열까지는 문을 열어두셨다고 하셨다 ㅋㅋ
비전공자 개발자라 그런지 약간 열등감? 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비전공자라 그런가?라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도 종종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비전공자이니 1.5배는 더 노력해야 해 하는 순간들도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약간의 열등감을 약간의 악바리로 극복해냈기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예로 다들 아는 컴퓨터 지식으로 대화를 나눌 때 나는 "그거 저는 몰라요. 알려주세요" 하고 바로 물었다. 자칫 밑천이 드러나게 하는 순간일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 해야만 지금은 밑천을 드러내도 몇 년 뒤에 쪽팔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팀장님은 지금 나의 수준이 개발 1년 했다고 아무도 믿지 못할 수준이라고 말씀하신다. 특히 난 비전공자라 더 대단하다고 하신다. 팔은 아무리 안으로 굽는다지만 이렇게까지 말로 표현해주시니 좋은 팀장님을 만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팀장
나는 사수가 있는 회사를 원했다. 내가 스스로 내 학습과정들을 들여다보면 보고 배울 사람이 있으면 더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 하기를 잘 한다. 그래서 따라 할 사람이 필요했다.
처음 면접 시 '저는 이 회사가 좋은 사수분이 있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개발팀 장님은 인상을 찌푸렸다. 말을 들어보니 사수에 의존하여 일을 편하게 하려는 태도로 보였던 것 같다. 모든 일은 혼자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말해주셨다. 그때는 그 말 때문에 내가 뽑히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게 아닌데.. ㅎㅎ
팀장님은 면접 때 인상을 찌푸린 것과는 달리 정말 잘 알려주셨다. 따지고 보면 나이, 경력 모두 10년 정도 차이가 나지만 정말 1~2살 형처럼 잘 알려주셨다. 애초에 팀장님이 많은 것들 컨트롤하며 회사의 서비스가 운영되는 체계였기 때문에 팀장님이 굉장히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 많이 알려주셨던 것 같다. 그리고 팀장님은 알려주는 것을 활력으로 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개발팀이 좋은 시너지가 났던 것 같다.
나 말고 들어온 두 명의 신입이 더 있다. 우리 모두의 실력은 많이 부족하지만 팀장님은 항상 우리를 존중해주셨다. 우리의 잘못을 우리의 잘못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고 항상 말씀해주셨다. 요즘은 '이것도 몰라'하며 장난스럽게 혼 내시지만 입사 초창기에 장난 하나 없이 친절만으로 우리를 잘 알려주셨다. 팀장님 덕분에 우리는 개발자로 잘 성장할 수 있었다.
회사
1년 전의 회사와 지금의 회사를 비교하면 정말 많이 성장했다. 직원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1년 새 나가신 분들도 있고 들어 신 분들도 있다. 나는 원래 입사 11번째 멤버였지만 입사 8번째 멤버가 되었다. 입사 초창기에 대표님께 '직원이 얼른 20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툭 던진 적이 있었는데 1년 새 그렇게 돼버렸다.
사람이 많이 지니 더 많은 일이 생기고 있고 어떻게 하면 생산성 있게 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더해지고 있다. 그 고민에 나의 의견도 꽤 반영된다.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으며 내가 이끌어갈 수도 있다. 내 기준으로 준비만 잘한다면 내 의견도 많이 어필할 수 있는 회사다. 그래서 좋다.
너무 좋은 스타트업들 이야기만 많이 듣다 보면 자칫 모든 스타트업들이 복지가 짱짱하고 파격적인 무언가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제 10명 정도 넘어가는 스타트업 회사가 흑자가 어마어마하게 나지 않는 이상 파격적인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도 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가 없다. 그런 것을 감안하고 이 회사에 들어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내 기준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해주고 있다. 보상도 그렇고 대우도 그렇고 여러 복지들도 그렇다. 확정은 아니지만 어쩌면 회사를 다니며 미국 출장을 갈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목표
1년은 배움의 시간이었다. 서비스를 이해하고 모든 것들을 건드려보고 시간은 좀 걸리지만 뭐를 가져다줘도 해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제 앞으로의 1년은 체계 잡는 시간으로 쓰고 싶다. 회사가 커나가면서 여러 가지로 애로 한 점들이 계속 생겨날 텐데 회사와 같이 체계를 잡아나가고 새로 오는 개발자들이 우리보다 더 빠른 시간 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잘 도와주고 싶다. 더불어 나만의 서브 프로젝트도 약간의 성과를 내서 재미있게 개발해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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