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rospective

[25년 회고] #16. AI TFT를 만들고 끝내 오픈하기까지 (feat. 겸직)

날개단 2026. 3. 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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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2025년 5월 27일, 10주년 행사 이후

2025년 5월 27일, 10주년 행사 무대에 섰던 날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시 나는 아직 사업부장이었다. 그 발표에는 사업부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고객을 향한 메시지도 담겨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 무대 위에서, 이 선언이 끝나면 나 역시 사업의 자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AI 개발의 방향 안으로 직접 뛰어들게 되겠구나, 결국 겸직에 가까운 형태로 이 일을 맡게 되겠구나 하는 예감도 강하게 들었다. 그날은 단순히 발표 하나를 마친 날이 아니었다. 회사가 다음으로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 조금 더 분명해진 날에 가까웠다. 대표님은 그 자리에서 AI 협업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선언했고, 내부적으로는 그 방향을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시작됐다.

AI TFT를 꾸리다

2025년 6월 13일, 선발 공지가 올라왔다

행사 이후, 이를 실제 제품으로 이어가기 위한 움직임은 빠르게 시작됐다. 2025년 6월 13일, AI TFT 선발 공지가 올라왔고 팀 구성도 빠르게 정리됐다. TFT장은 나였고, 실제 구성은 기획과 개발 중심의 총 6명 규모였다.

초반부터 팀은 빠르게 모였고,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일반적인 TFT 발족이라기보다, 모두가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한 마음가짐으로 들어온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자발적 지원으로 모인 팀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팀의 구성 방식이었다. 팀은 자발적 지원으로 모았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들어온 팀이 아니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로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원을 받고, 면담을 진행하며, 우리가 만들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지금 이 일이 필요한지 계속 설명했다.

당시 남겨진 글들을 다시 보면 팀의 공기가 꽤 선명하다. 모두가 이 프로젝트를 단순한 추가 업무가 아니라,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드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단순히 AI가 유행이어서 모인 것이 아니라, 정말 해보고 싶다는 열정과 남다른 각오가 분명히 있었다.

나 역시 면담을 하며 비슷한 감각을 받았다. 각자의 방향은 조금씩 달랐지만, 열정만큼은 충분하다고 느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 부족함보다 더 크게 보였던 것은 배우고 해내려는 태도였다. 그래서 나도 그에 맞게 더 강하게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남긴 말처럼, 적어도 열정만큼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추진만이 아니라 신뢰를 쌓는 시간이었다

이 시기를 단순히 몰아붙인 시간으로만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과정에서는 팀원들의 동기가 꺾이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많은 의견 교류의 시간을 들였다. 단지 방향을 정해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왜 이 방향으로 가는지, 지금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각자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계속 주고받았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단순한 실행 회의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방식에 대한 신뢰를 쌓는 시간이기도 했다. 속도가 중요한 프로젝트였지만, 신뢰 없이 속도만 내서는 오래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작부터 일하는 방식이 달랐다

새로운 팀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인원을 배치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직 형태가 없는 목표에 사람들의 시간을 걸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초반부터 일하는 방식도 달랐다. 회의만 하고 흩어지는 팀이 아니라, 바로 붙어서 고민하고 바로 실행하는 팀으로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 6월 16일 이후 남은 흔적들을 보면 팀의 속도가 보인다. AI 아이디어 노트, 매일 AI 트렌드 파악하기, AI 기능 우선순위 판단 기준, 타사 AI 고객 상담 성공사례 정리, 내부 고객 인터뷰 내용 정리, 기획 중간 보고 같은 문서와 업무가 거의 매일 쌓였다. 처음 팀이 꾸려지고 나서 우리가 한 일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빠르게 배우고 정리하고 기준을 세우는 일이었다.

겸직의 시작

2025년 7월부터, 예감은 현실이 됐다

10주년 행사 무렵 막연하게 느꼈던 예감은 결국 현실이 됐다. 나는 본격적으로 겸직 상태가 됐다. 사업부장 역할은 그대로 책임져야 한다고 봤고, AI TFT는 그 위에 추가된 미션에 가까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업 80, 개발 20 정도의 비중을 기준으로 가져가려 했다.

시간이 갈수록 50 대 50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깔끔하게 나뉘지 않았다. 제품의 방향을 잡고,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구현 범위를 조율하고, 팀원들과 시행착오를 함께 겪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개발 쪽의 비중이 점점 더 커졌다. 처음에는 80 대 20을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점점 50 대 50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겸직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겸직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어쩔 수 없이 낮에는 사업부, 밤에는 TFT 일을 하는 흐름이 됐다.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가 시작되는 식이었고, 어느 쪽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일들이었다.

무엇보다 단순히 일이 두 배가 된 수준이 아니었다. 내 아래에 있는 부서원과 팀원만 해도 20명 가까운 규모였고, 그 인원들을 동시에 이끌어야 했다. 때로는 마이크로매니징이 필요했고, 때로는 방향 제시가 필요했다. 여기에 유관부서와의 협의, 대표님과 경영진과의 소통까지 겹치면서 난도는 배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둘 다 잘해내고 싶은 욕심도 컸다. 사업부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AI TFT도 반드시 성과를 내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미치도록 달렸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의 나는 CPU 200% 상태에 가까웠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개발만 보는 사람도, 사업만 보는 사람도 아닌 상태로 이 일을 끌고 갔다. 어쩌면 그래서 제품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기능 자체보다, 그것이 실제 고객과 사업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함께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100일 뒤 오픈이라는 목표

2025년 6월 16일 시작, 9월 24일 오픈 목표

처음 목표는 단순했다. 2025년 6월 16일 시작, 100일 뒤 오픈. 날짜로 치면 9월 24일이었다. 짧지만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방향도 있었고, 팀도 모였고, 회사 안팎의 기대도 있었다. 내부적으로도 3개월 안에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강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목표는 지키지 못했다.

왜 실패했는가

집중은 쉽게 나뉘었다

이 실패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사업부의 일과 새로운 제품 개발을 동시에 안고 가야 했기 때문에, 판단도 실행도 쉽게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팀도 배워가는 과정에 있었다

팀원들 역시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방식에 익숙해지는 과정에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속도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학습의 시간이었고, 그 간극을 줄이는 데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하려 했다

무엇보다 초반에는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준비하려 했다. 처음부터 더 잘 만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이왕 하는 거라면 제법 완성도 있는 상태로 내놓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우선순위가 흔들리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것과 나중에 있어야 할 것이 한 덩어리처럼 섞이기 시작했다.

지나고 보니 처음에 해야 했던 일은 더 많은 준비가 아니라, 덜어내는 일이었다. 제품을 만드는 초반에는 무엇을 넣을지보다 무엇을 빼고 갈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그래도 사업부의 관점은 도움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사업부를 병행했기 때문에 오히려 놓치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고객이 실제로 반응할 지점, 지금 당장 시장에서 의미가 있는 기능, 제품이 단순한 기술 시연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기준 같은 것들은 사업의 관점에서 계속 점검할 수 있었다.

달리는 와중에 생긴 변수들

역대 가장 깊이 몰입한 시기였다

돌이켜보면 이 시기는 정말 엄청난 크런치 모드였다. 그냥 바빴다고 말하는 정도로는 부족했다. 7년 넘게 일하면서 여러 번 바쁜 시기를 겪었지만, 이렇게까지 깊이 몰입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일정은 빠듯했고, 계속 새로운 판단을 내려야 했고, 하루를 길게 쓰는 것만으로는 감당이 안 될 만큼 에너지 밀도가 높은 시간이었다.

다만 단순히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수정하는 흐름 속에 있었다. 특히 AI라는 물결이 들어오면서 개발 속도 자체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수준으로 올라갔다. 예전 같으면 더 오래 걸렸을 시도와 구현이 훨씬 빠른 템포로 이루어졌고, 덕분에 생각과 실행 사이의 거리가 눈에 띄게 짧아졌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는 여태까지 쌓아온 지식과 경험, AI를 활용하는 방식, 사업부를 맡으며 얻은 관점, 고객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꺼번에 융합되는 느낌이 있었다. 하나씩 따로 놓고 보면 익숙한 요소들이었지만, 이 시기에는 그것들이 따로 움직이지 않고 한 방향으로 폭발하듯 모였다. 어쩌면 그래서 더 힘들었고, 동시에 더 강하게 몰입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AI 프로젝트도 함께 소화해야 했다

그 과정이 AI TFT 안에서만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중간에는 다른 엔터프라이즈 기업의 AI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해야 했다. 표현만 놓고 보면 우리가 그 일을 '도왔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 체감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곁가지처럼 잠깐 지원한 일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AI 사업의 또 다른 방향으로 함께 소화해야 하는 일이었다.

즉 우리는 단지 우리 제품만 만드는 팀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프로덕션을 밀어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 실제로 요구되는 기준과 결과도 감당해야 했다. 집중력이 분산되는 부담은 분명 있었지만, 동시에 그 경험은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엔터프라이즈 역시 결국 우리가 소화해야 할 영역이라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객과 실제로 부딪히며 얻은 요구사항과 피드백,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 필요한 기준들은 결국 우리 프로덕션을 더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 프로젝트 자체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고객이 우리를 바라보는 이미지 역시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기존 서비스 대비 개선된 경험 덕분에 실질적인 사용량도 3배 이상 증가했다. 돌아보면 그 시간은 집중력을 나눈 시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 제품과 사업의 방향을 더 현실적으로 다듬게 한 시간이기도 했다.

TFT는 끝나지 않았다

2025년 8월 26일, 단발성 조직이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원래라면 9월 24일 오픈을 기점으로 TFT가 정리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초안 단계에서는 개발자 전원을 해산해 SaaS 개발팀으로 이관하는 방안도 있었고, 중간에는 일부 인력을 복귀시키는 안도 검토됐다.

하지만 2025년 8월 26일, 대표님·부대표님과 논의한 끝에 방향이 바뀌었다. AI TFT는 9월 24일 이후에도 종료하지 않고 정식 팀으로 전환해 개발을 지속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개발 인력은 전원 유지하는 쪽으로 확정됐다. 다만 일부 인원은 다른 일정 때문에 10월부터 1월까지 파견 형태로 병행했고, 그 외에는 팀의 뼈대를 유지한 채 계속 밀어가기로 했다.

이 결정은 꽤 중요했다. 그때부터 이 일은 더 이상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라, 회사 안에서 계속 가져가야 할 축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맡았다가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책임지고 다음 단계까지 연결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2025년 12월, 역할도 완전히 전환됐다

연말이 되었을 때, 일은 단순히 이어지고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2025년 12월부터는 온전히 AI 사업개발실장으로 전환되었고, 그에 맞춰 기존 역할의 인수인계와 여러 과정도 정리해야 했다. 한 시기의 일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마무리를 제대로 해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2026년 1월부터는 보다 온전히 AI에 몰입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전까지는 사업부와 TFT를 동시에 안고 달리며 버텨낸 시간이었다면, 그때부터는 역할 자체가 AI 쪽으로 분명하게 정렬되기 시작한 셈이다.

돌이켜보면 사업부를 맡았던 1년은 내게 여러 관점을 갖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단순히 개발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어떤 메시지가 시장에서 의미를 갖는지, 기술이 실제로 어떤 경험으로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훨씬 더 많이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어쩌면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후 AI 제품을 바라볼 때도 기능 자체보다 고객 관점과 사업적 맥락을 함께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오픈했다

2026년 2월 23일,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래도 끝내 2026년 2월 23일, 제품은 오픈했다. 예정보다 늦었고, 처음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도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완벽한 시작이 아니라, 실제로 세상에 내놓았다는 사실이었다. 일정 안에 모든 것을 맞추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 실패 덕분에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욕심인지 더 분명하게 구분하게 됐다.

오픈 한 달 뒤에도 숨 돌릴 틈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픈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이다. 출시가 끝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오히려 그 이후부터가 더 본격적인 시작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료 결제는 실제로 일어났고, 건설적인 미팅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반응이 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해야 할 일도 더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능을 더 다듬어야 하고, 더 많은 고객 맥락에 맞춰야 하며, 기대치 역시 점점 더 높아진다.

무엇보다 시장의 변화 속도가 심상치 않다. AI 업계는 더 치열하게 발전하고 있고, LLM 자체도 믿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기업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지금 이 시장은 잠깐 멈춰 숨을 고를 틈을 잘 주지 않는다.

그래서 오픈 한 달이 지난 지금의 감각은 안도감보다 긴장감에 더 가깝다.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사실은 분명 의미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이제부터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과 기대다.

마치며

사업과 개발 사이에서,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이 시간을 지나며 다시 확인한 것은 하나였다. 고객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야 결국 사업이 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실제로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 내놓는 과정 안에서는 그 당연한 문장이 훨씬 더 무겁게 다가왔다. 기술만으로는 부족했고, 기능만으로도 부족했다. 결국 고객이 왜 써야 하는지, 어떤 맥락에서 필요로 하는지, 그것이 실제 문제를 어떻게 풀어주는지를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답을 알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고객은 어렵고, 사업도 어렵고, 개발도 어렵다. 고객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사업은 좋은 제품 하나만으로 단순하게 풀리지 않으며, 개발은 방향이 맞아도 구현과 완성까지 가는 과정이 늘 예상보다 어렵다. 그리고 이 셋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하나를 깊게 들여다볼수록 결국 다른 둘의 문제로 이어진다.

엄청난 결과를 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고민의 과정, 어렵다고 느끼는 지점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 계속 배우고 싶다는 갈망,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 글은 어떤 결론이라기보다 아직도 배우는 과정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그리고 그 과정 위에서 flow AI는 앞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